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이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삼성전자를 둘러싼 ‘사법리스크’ 악재는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됐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확산과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경영시계 제로’ 악몽이 되풀이될까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검찰의 고유권한이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칼날이다. 검찰권의 근간에는 헌법과 주권자인 국민이 있다. 국민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검찰에 공권력을 줬다. 그 권한이 국민에게서 나온 만큼 검찰은 객관적인 자세로 사건을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돼 검찰이 보인 그 동안의 행태는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검찰이 균형감을 잃었다는 비판은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 사이에서도 이 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달 1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복현·사볍연수원 32기)는 이 부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원 11명을 자본시장법 및 외부감사법 위반, 형법상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의 기소 결정은 그들이 내부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한 수사심의위 의결을 묵살한 첫 사례이다.
올해 6월 26일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이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및 수사중단’을 의결했다. 표결에 참여한 외부전문가 13명 중 10명이 위 의결에 찬성표를 던졌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비대해진 검찰권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부정적 여론을 반영, '시민의 사법 참여를 통한 검찰권 통제'라는 목표 아래 외부전문가들이 수사·기소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수사심의위원회'를 도입했다. 이 사건에 앞서 대검 수사심의위는 8차례 소집됐다. 검찰은 수사심의위가 낸 8번의 의결을 모두 따랐다.
검찰은 무려 4년여의 기간 동안 재계 관계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여왔다. 삼성 주요 계열사 등을 50여 차례 압수수색했고, 전현직 임직원 110여명에 대해 430회에 이르는 소환조사도 진행했다. 확보된 수사기록 분량만 20만 페이지에 달한다.
전례를 찾기 힘든 방대한 수사 규모지만,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 과연 검찰이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대하고 있는지 의문을 자아내게 만드는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유죄’ 결론을 먼저 내놓고 사실관계를 여기에 끼워 맞춘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사건, ‘삼성 불법 경영승계 의혹’ 핵심은 이 부회장과 경영권 승계 작업 사이 연관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22페이지 분량의 검찰 보도자료 어디에도 이 부회장이 분식회계 혹은 시세조종을 지시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사건 모든 의혹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입증하는 증거조차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참여연대의 고발과 박영수 특검의 소환조사로 시작된 이 사건 수사 쟁점은 '삼바 분식회계 의혹'이었다. 3년을 넘게 끈 분식회계 수사는 소득 없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검찰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사 초점을 '시세조종'으로 변경했다. 수사 흐름 변경과 관련해 검찰은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검찰이 새로 주목한 시세조종 의혹의 경우, 검찰 주장과 사실관계의 시점이 불일치 하는 등 수사 부실을 시사하는 모순이 상당수 발견된다. 예단과 심증, 정황으로 가득찬 검찰 제공 자료는 대검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를 넘어 '수사 중단'을 권고한 이유를 말없이 설명하고 있다.
이복현 부장검사는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 부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 등이 치밀한 계획 하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그룹승계에 유리한 비율로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어 “합병 성사 이후 불공정 논란 회피와 자본잠식 모면을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자산을 4조원 이상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했다. 특히 그는 '직접 증거의 존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증거가 너무 많아 일일히 밝힐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복현 부장은 '일일히 설명하기 힘들만큼 많은 증거'를 가지고도 대검 수사심의위에 참여한 외부전문가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같은 달 7일 열린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그렇게 많은 증거를 가지고도 '혐의 소명'에 이르지 못햇다. 당시 법원은 '구속의 상당성과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이 이 부회장 등을 상대로 낸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檢의 답정너식 수사... 辯 "애초에 이재용 기소 목표로 정해놓고 수사한 것"
석연찮은 점은 더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업무상 배임'은 대검 수사심의위 심의는 물론 영장 청구 과정에서도 거론된 사실이 없다. 다수의 전문가는 검찰이 기습적으로 적용한 '업무상 배임' 혐의에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범죄구성요건 성립 자체가 의문'이란 견해를 나타낸 전문가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이 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고 합병을 실행해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야기했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 적용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혐의 적용은) 상법‧자본시장법 및 경영‧회계학 전공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뤄진 것”이라고 부연했다.
검찰이 외부 전문가들를 불러 면담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이 면담에는 검찰의 삼성 수사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 전문가들도 포함돼 있다. A 교수는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의견을 낸 학자들에게 사실상 입장을 바꿀 것을 종용했다"는 충격적 증언을 했다. A 교수에 따르면 업무상 배임 혐의 적용에 관한 수사팀의 설명은 거짓이다.
A교수는 “검사실에 머문 시간이 8시간 정도 되는데 '업무상 배임'에 관해서는 물어본 적조차 없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삼성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법리상 허점과 부당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학자 중 한 명이었다.
변호인단도 이 점을 꼬집고 나섰다. 변호인단은 “영장 청구와 수사심의위 심의 시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업무상 배임죄를 기소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추가했다”며 “수사팀의 태도는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찾기보다는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 부회장 기소를 목표로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공소장 결재 과정에서 담당 차장이 결재를 거부했다는 말도 들린다. '담당 차장 패싱'의 내막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추론이 나오고 있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이란 평가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역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억지 공소장’이 빚어낸 해프닝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금이라도 검찰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벗어나 공정한 시각으로 사건을 대하길 바랄 뿐이다.
September 06, 2020 at 11:26PM
https://ift.tt/3jLj3LI
[기자수첩] 그 많다던 檢의 '이재용 증거'는 다 어디갔나 - 시장경제신문 | 메콘뉴스
https://ift.tt/30qUpK2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