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울산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재판이 또다시 공전됐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검찰에 ‘증거목록을 피고인별로 분리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증거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는 절차도 이뤄지지 못했다. 재판부는 변호인측 의견을 받아들여 검찰에 “증거목록 분리를 검토해 달라” 고 했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1부(재판장 김미리) 심리로 열린 이 사건의 공판에서 한병도 전 정무수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변호인은 “한병도 피고인과 관련 없는 내용이 있으니 증거목록을 분리해 달라”며 “피고인 방어권이 침해되는데 증거목록이 상당 기간 경과되도록 수정되지 않는 것을 법원에서 허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증거목록은 검찰이 피의자신문조서, 진술조서 등 증거의 제목을 적은 서면으로 피고인측은 이들 증거를 복사해서 본 후 각 증거에 대한 인정 여부를 표시해 법원에 낸다.그러면 검찰이 부동의한 증거에 대해선 철회하거나 증인을 신청한다. 통상은 검찰이 공범 사건의 경우 모든 공범에 대해 하나의 증거목록을 제출한다. 그런데 한 전 정무수석은 단독범으로 기소된 것이라며 그와 관련 없는 부분을 빼고 별도의 증거목록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송철호 울산시장 변호인도 같은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피고인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2018년 울산시장 선거에서 송철호 후보에 대한 선거캠프 구성에서부터 선거 전략수립, (경쟁후보에 대한)수사,
(당내경선 후보자에 대한)매수 등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범행이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변호인들이 피고인별로 분리해 증거를 신청하라고 재판부를 통해 요구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변호인들이) 양이 방대하고 일부는 관련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라며 “양측 주장이 다른데 검찰 측에서 개별 증거에 대한 설명서를 제출해달라”며 검찰 협조를 요청했다. 검찰은 “증거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설명서를 내면 보통 피고인측에서 반발하는 상황”이라며 “한병도 측에서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부동의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가 입증하겠다”고 했다.
공소장 일본주의에 따라 검찰은 재판 초반에는 재판부에 공소장만 제출한다. 증거설명서 등 범죄사실을 담은 서류를 내면 ‘재판부에 유죄의 예단을 줄 수 있다’며 피고인들이 반발한다. 그런데 거꾸로 재판부에서 ‘증거설명서를 내 달라’ 고 한 것이다.
증거 인부 방법을 두고도 재판부와 검찰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은 “초기에는 증거에 대해 피고인별 구분을 검토했지만 공무원의 선거개입이라는 사건 성격상 나누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관련 없는 부분은 부동의하면 검찰이 증인신청 등으로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증거를 많이 신청하면 우리도 부담이지만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의도는 없다”고 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재판이라는 게 한정된 시간을 갖고 하는 것”이라며 “저도 피고인도 검찰도 (한정된)시간을 갖고 신속하게 해야 하는 것인데 낭비 같은 것은 없을까.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호인 측 의견을 반영할 부분 있으면 반영해서 다음 기일에 해 달라”고 했다.
이 같은 재판 진행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보통 피고인과 관련 없는 부분에 대해 부동의하면 검찰이 이를 철회하거나, 관련 있을 경우 증인을 불러 신문하는 식으로 정리한다. 한 변호사는 “증거 인부 단계에서 저렇게까지 주장하고 재판부가 이를 일부 받아주는 상황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재판장인 김미리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채용비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 동생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업무방해’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당시 돈을 받아 전달한 데 불과한 공범들은 그보다 높거나 같은 형(징역 1년,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형성평 논란이 일었다.
September 24, 2020 at 09:5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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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도 증거목록 따로 만들어 달라” 또 공전된 울산 재판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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